ARTISTS
JUN Youngjin CV Download
회화가 매체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 역사적, 시대적, 개인적인 서사를 이미지에 담지 않아야 한다는 모더니스트
페인팅의 목표는 매혹적이다. 나는 그것이 회화를 지속시키는 중심축이라 생각한다. 서사가 짙은 회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록으로의 의미가 짙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적 특수성이 있더라도 시대적
의미를 가지기는 힘든 ‘자연’을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다. 자연만 그려진 그림은 이미지 자체가 설명하는 내용보다 표현 기법이나 재료의 특수성 등의 작품 외부적인 요소를
통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역산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자연은 시대 초월적이고 대중적인 소재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이나 재료 등을 통해 그 자체로도 현대회화의 의미, 동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안을 메운 도형들은 이미지를 추상과 구상으로 나누는 최소한의 기준점이다. 두 가지를 함께 담는 것은 회화가 오랜 시간 추구했던 ‘세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된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의지’ 사이 두 가지의 작용 반작용으로 기능한다. 멀리서 볼 때는 도형을 구상적인 이미지의 부분으로 인지하게 되고, 가까이에서 볼 때는 도형들의 조합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미지를 메우는 요소보다는 도형들이 연결된 것으로 인지하게 되고, 작품은 점점 추상의 영역으로 다가가게 된다. 전자기기를 이용하여 화면 속에서 이미지를 볼 때, 실제로는 픽셀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풍경이라는 형태로 인지하고, 반대로 실제로 가까이 보았을 때는 추상적 이미지로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특히 이 점은 회화 작품은 실제로 감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아날로그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대 회화는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스케치를하거나 프로젝터나 출력물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리기는 등 많은 부분이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다. 나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화면 속에서 특히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였던 나의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은 말 그대로 회화를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속에서 회화가 지속되고자 하는 동력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도 알고 싶다. 앞으로도 회화 표면의 힘이 화면의 힘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꾸준히 연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