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CHOI Young Don CV Download

최영돈은 특정 대상을 반복해서 찍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의 집적, 수집이자 그 사물에 존재에 달라붙은 시간의 기록, 채집이다. 생각해보니 그는 그동안 오로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그러나 정작 그 시간 자체의 기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물이나 풍경을 빌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단한 변화를 겪고 소멸하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랄까. 단지 현존하며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한 도저한 우주자연의 섭리 같은 것을 슬쩍 안기는 작업이었다고 기억한다. 기존 사진이나 회화는 한결같이 특정 순간의 대상을 정지시켜 보여준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절취하고 잘라낸 상처들이다. 운동하는 대상을 평면안에 응고시킨 자취다. 그러나 부동의 평면에 움직이는 세계를 담아내기는 사실 요원한 일이다.

최영돈의 근작은 꽃을 소재로 선택해서 이를 찍었다. 흔한 꽃사진이겠지만 정작 사진은 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근접해서 대상의 내부로 들어가 촬영했는데 초점이 맞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흐릿하게 빠져나가고 견고한 형태를 망실했다. 양쪽에 방향을 달리해 포착한 꽃사진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원형이미지가 자리했다. 꽃이 풍경처럼 펼쳐진 화면에 작은 원형이 꽃이미지가 눈처럼, 꽃가루처럼 부유하는 장면도 있다. 또는 원형의 이미지만이 화면을 빼곡이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색띠처럼 배열되어 있거나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같은, 원형의 점들이 캔버스 천 사이로 선염하듯 스며들어 일체를 이룬 추상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과녁을 닮은 이 원형의 기이한 색환은 꽃을 빠르게 회전시켜 얻은 이미지다. 너무 빠른 시간과 속도, 운동을 부여해서 얻은 꽃이미지인 셈이다. 한 쌍으로 위치한 이 꽃 사진은 구체적인 사실적 이미지와 추상적 이미지가 공존하며 느린 시간과 너무 빠른 시간이 함께 하고 있다. 정지와 운동, 느림과 빠름, 존재와 생성 사이에서 유동한다. 이질적인 시간 속에서 동일한 대상은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맹렬한 흐름 속에서만 대상을 본다. 그것은 보는 일이자 동시에 망각하는 일, 기억하는 일, 다시 보는 일이다. 자연계의 모든 것은 실재이면서 동시에 끝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만 존재한다. 풍경은 단 한 번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것은 수시로 돌변하며 격렬한 시간의 흐름 속에 환각적으로 다가왔다 이내 사라지면서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풍경을 재현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기억과 사라지는 시간의 속도에 따르는 몸, 의식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찰나적인 순간 속에서만 풍경은 있고/ 없다. 또한 풍경이란 결국 인간이 그 존재를 의식했을 때 가능하다. 인간의 시점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이 풍경이다. 물질덩어리/ 사물이 드디어 풍경이 되려면 인간의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선은 결국 시간 안에서만, 운동하는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시간이 빠진 시선은 없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시선(존재)이냐를 질문하기 이전에 어떤 속도, 시간 속에서의 시선(존재)인지를 물어야 한다. 꽃이라는 결정체를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꽃이라는 결정체 안에 스며드는 시간, 속도를 보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까 최영돈의 꽃은 시간의 속도 속에서 변화하는 꽃의 이미지, 운동하는 꽃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속도는 ‘사물들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비몸체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소용돌이치는 공간에서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몸의 운동이 가지는 강도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성질’이다. 최영돈의 꽃은 시간의 속도 안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알 수 있는/없는 꽃이다. 진동, 선회, 회전, 회전운동, 춤 혹은 도약하는 꽃이다. 작가는 꽃을 운동 자체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사진 속 이미지는 구체적인 꽃의 물리적 자리에 지속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시간의 속도가 원으로 선회한다. 시간은 순환하는 원이다. 서구의 직선적 시간과는 반대로 동양에서의 시간은 원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사실 그러한 시간의 속도, 흐름은 인간의 눈으로는 지각하기 어렵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선회하는, 원으로 진동하는 꽃의 이미지를 얻었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동물, 하나의 인격은 움직임과 휴지, 빠름과 느림, 그리고 정동과 강도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더 이상 정의되지 않는다.”(들뢰즈)

꽃이란 존재는 여러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외부와 이 외부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만남들에 항상 개방되어 있는 공간 속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형태 없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만이 있게 된다. 그러니까 ‘주체는 없고 주체 없는 주체화’만이 있다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고 지각불가능한 운동들인 속도와 강도, 시간의 흐름이 꽃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 최영돈의 꽃이미지는 형성되면서 해체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시각화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시간 속에서, 운동 속에서 자리한 찰나적인 꽃의 이미지/시간의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선사한다. 모든 것은 그렇게 선회하는 원형 아래 사라진다.


시간안의 꽃 -박영택-